프라이버시

프로파일링 혹은 신상털기

2014.09.12

프로파일링 혹은 신상털기 검색으로 구직자를 평판을 캐본다?

방해받지 않고 홀로 있을 권리이자 남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자신만의 은밀한 취향인 프라이버시는 인간답고 존엄한 삶을 위한 필수 조건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7조는 “모든 국민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한다”고 사생활 보호를 기본권으로 보장하고 있다.

누구나 누려야 할 기본권인 ‘프라이버시’가 소수의 특별한 계층만 누릴 수 있는 ‘사치품’이 되어가고 있다. 높은 담장을 쌓고 철조망을 두른 뒤 감시카메라까지 설치한 고급주택의 거주자와 골목길에 창문이 노출된 반지하 방에 거주하는 사람의 프라이버시 보호 정도는 다르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와 유사한 현상이 온라인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대중의 관심 속에 있는 유명인이 아니라 일반인들마저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 서비스로 인해 지속적으로 사생활 영역이 침식됨에 따라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해 별도의 자원과 지출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검색 서비스를 통한 프로파일링, 이른바 신상털기가 늘어나고 있다. <출처: gettyimage>

그 배경엔 검색으로 단편적 정보를 끌어모아 개인에 관한 종합적 신상파일을 만들어내는 프로파일링(Profiling)이 쉬워진 점이 있다. 프로파일링은 자료 수집을 통한 정보 재구성을 뜻하나, 수사용어로는 범죄유형분석법을 가리킨다. 범죄 관련 정보를 분석해 범인의 습관, 나이, 성격, 직업, 범행 수법을 추론한 뒤 이를 바탕으로 범인을 특정해내는 수사 기법을 말한다. 이러한 범죄 수사의 기법이 전문 프로파일러만의 영역이 아니게 된 세상이다. 익명의 수많은 누리꾼들이 각자의 전문 지식과 노하우를 동원해 사소한 실마리들을 찾아 나서고 그 정보를 집대성하면, 누구인지 제대로 몰랐던 사람의 프로파일링이 가능해진다. 다른 말로 하면 ‘신상털기’다.

취업과 입학을 좌절시키는 과거의 흔적

인터넷을 떠도는 과거의 흔적들은 개인의 명망과 평판에 끼치는 영향이 지대하다. 특히 많은 기업과 대학은 취업과 입학 과정에서 인터넷 흔적을 조사해 평판을 살펴보는 핵심 도구로 쓰고 있다. 2010년 마이크로소프트가 미국, 영국, 독일 등 4개국 100대 기업 인사담당자를 상대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70퍼센트가 구직자들의 인터넷 활동을 살펴본 뒤 입사를 거부할 수 있다고 밝힌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국내 대표적인 헤드헌팅 업체의 사장은 “헤드헌팅과 평판관리의 모든 대상자를 상대로 인터넷 검색을 하고 있다”며 “공식 기록으로 제출되지 않는 유용한 단서를 ‘구글링’을 통해 많이 얻게 된다”고 말했다. 특히 페이스북 같은 소셜네트워크 서비스는 누가 어떤 그룹에 속해 누구와 어울리는지를 파악하는 데 결정적이다. 실제로 많은 기업에서 경력직원을 채용할 때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그에 대한 평판이다. 이력서와 경력증명서는 요식적 조건에 불과하고, 함께 일해온 전 직장의 동료들이나 지인을 통해서 전해지는 평가와 평판이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된다. 또한 그와 함께 일했거나 알고 있는 사람들이 인터넷에 실명과 익명으로 올려놓은 글도 주요한 고려 대상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디지털 시대에 평판은 소중히 관리되어야 자신의 정체성이자 자산이다. 디지털 평판을 관리하지 못하면 인생의 기회는 축소된다. 평판이 무너진 삶은 초라하고 고단하다.

프로파일링의 족쇄. 범죄자를 대상으로 한 수사기법인 프로파일링이 일반인을 대상으로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출처: gettyimage>

국내에서도 언론에 보도된 사례가 적지 않다. 2011년 봄 인터넷을 달궜던 사건이다. 경남지방경찰청 소속의 한 여경은 그해 4월 갑자기 대기발령 처분을 받았다. 7년 전 경남 밀양에서 일어난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 당시 친구이던 가해자 미니홈페이지에 피해자를 비방하는 글을 올린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비난 여론이 쏟아진 탓이다. 글을 올렸을 당시 그는 고교 3학년으로 미성년자였지만, 성폭행 피해자를 비방하고 친구인 가해자를 두둔했다. 싸이월드 미니홈피는 실명을 쓰게 돼 있어 글쓴이의 이름이 드러난다. 가해자의 미니홈피에 글을 남겼던 친구가 성인이 된 뒤에 경찰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많은 사람들이 분노했다.

그동안 국외에서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 서비스에 올린 과거 글이 문제가 되어 취업이 좌절되거나 직장에서 곤란한 지경에 처하는 일이 국내에서도 발생한 것이다. 해당 여경은 문제가 불거진 날 바로 경남지방경찰청 자유게시판에 사과문을 올려 용서를 구했다. “7년 전 고등학교 시절 철모르고 올린 글이지만 피해자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행동을 깊이 반성하고 사과 드린다”며 “평생의 짐으로 안고 자숙하겠다. 앞으로 생활하면서 언행에 조심하고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경찰이 되겠다”고 용서를 구하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누리꾼들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다. 경남지방경찰청 홈페이지는 당시 여러 차례 접속장애를 기록할 정도로 접속이 폭주했다. 실명 확인을 거쳐야 글을 올릴 수 있는 이 게시판에는 4000여 건에 이르는 항의글이 쏟아졌다. 문제가 불거진 이후 경남지방경찰청 자유게시판에 2주 동안 올라온 글의 양은 과거 10년간 올라온 글과 맞먹는 수준이다. ‘철없던 시절의 잘못’이라는 해명은 거의 수용되지 않았고, 오히려 그의 과거 다른 행적들까지 게시판에 올라와 비난의 대상이 됐다. 이 여경은 2014년 초 진급 시험에 합격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또다시 사이버 괴롭힘에 노출됐다. 경남경찰청 관계자는 “앞으로도 그가 벗어날 방법이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경찰은 2012년 이와 관련해 징계 여부를 검토했지만 법적으로 문제 삼을 근거를 찾을 수 없었다.

2012년 9월 성균관대학교는 1년 전 입학사정관제 전형으로 합격해 다니고 있는 1학년 학생의 합격과 입학을 취소하는 결정을 내린 바 있다. 해당 학생이 고교 시절 지적장애인 집단 성폭행 사건에 가담했던 사실이 인터넷을 통해 뒤늦게 알려지고 네티즌 여론이 들끓게 된 게 배경이다. 입학 사정 절차에서 드러나지 않은 고교 시절의 행적을 이유로 재학생의 입학 자체를 취소한 사례는 매우 이례적이었다.

당신의 평판을 관리해드립니다

프라이버시를 지켜주고 온라인에서 평판을 관리해주는 유료 서비스가 등장하고 있다

이는 디지털 시대에 새로운 산업을 만들어내는 배경이다. 프라이버시를 지켜주고 온라인에서 평판을 관리해주는 유료 서비스가 등장하고 있다.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어 자유롭게 프라이버시 관련 정보를 공개하거나 이를 상업화하는 것이 허용되고, 소셜네트워크 서비스 이용이 활발한 미국에서 유료 서비스가 활발하다.

특히 미국 법률은 기업들이 채용 전에 대상자들에 대해 소셜네트워크 서비스 등을 통해서 다양한 조사를 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 미국은 기업이 채용 전에는 대상자에 대한 평판 조사를 할 수 있으나, 채용한 이후에는 금지된다. 기업이 사원들의 소셜네트워크 서비스 활동을 조사하고 이를 이용할 경우 부당한 차별로 간주해 처벌하고 있다.

온라인 평판관리 서비스의 등장은 온라인 프라이버시 침해가 광범하다는 것을 나타내고 유명인 등 일부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미국의 ‘레퓨테이션닷컴’(Reputation.com), ‘리무브유어네임’(RemoveYourName.com), ‘디펜드마이네임’(DefendMyName.com) 등은 개인과 기업을 상대로 다양한 온라인 평판 관리 상품을 판매하고 있는 대표적인 업체들이다.

주된 고객층은 대학 입학이나 취업을 앞둔 사람들로, 인터넷에 남아 있는 부정적 기록으로 불이익을 얻을 우려가 높은 사람들이다. 레퓨테이션닷컴의 경우 한 달에 15달러짜리 개인용 서비스에 가입하면, 인터넷에서 가입자가 어떤 형태로 언급되거나 검색되고 있는지를 알려준다. 구글, 야후, 빙 등의 검색엔진에 노출되는 고객의 부정적 정보를 삭제하거나 감춰주는 서비스는 29.95달러에 팔고 있다. 구직을 앞둔 대학생을 겨냥해, 아예 ‘마이레퓨테이션 스튜던트’라는 저렴한 상품까지 내놓았다.

구글도 2011년부터 유사한 평판 관리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인터넷에서 자신의 이름이 언급될 때마다 전자우편으로 알려주는 ‘웹 세상의 나’(Me on the web) 서비스다. 유료 서비스와 달리 모니터링만 제공할 뿐, 삭제 요청이나 검색 결과 감추기 등의 서비스는 제공되지 않는다.

사치품이 된 프라이버시, 가르보 경제

사치품이 된 프라이버시, 가르보 경제

[카오스 시나리오]의 저자인 언론인 밥 가필드(Bob Garfield)는 2011년 미국 공영라디오방송(NPR)과의 인터뷰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프라이버시가 거의 사라져가면서 그 가치가 매우 높아지고 있다”며 “홀로 있으려 하는 개인의 요구를 ‘가르보 경제(Garbo Economy)’라고 부르자”고 제안했다. 스웨덴 출신의 영화배우 그레타 가르보(Greta Garbo)는 신비로운 미모로 20세기 전반 은막의 여왕으로 군림했으나, 인기 정점인 1941년 30대 중반의 나이로 돌연 은퇴했다. 이후 미국 뉴욕에서 1990년 84세를 일기로 숨지기까지 평생 홀로 지내면서 극도로 사생활을 숨긴 채 생활했다. 신비로운 미녀 영화배우를 향해 쏟아지는 매스컴과 대중의 호기심으로부터 프라이버시를 지키기 위해 그레타 가르보는 상당한 비용을 대가로 치러야 했다. 그레타 가르보가 프라이버시를 지키려 쏟았던 높은 비용을 ‘가르보 경제’라고 명명한 것이다.

프라이버시 보호를 내건 유료 서비스가 신종 산업으로 등장하는 현실은 인터넷 시대 사생활의 종말을 알려주는 것만이 아니다. 새로운 불평등 문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사용자들이 인터넷을 쓰면서 부지불식간에 노출한 사생활 정보로 인해 프로파일링 위협 속에 있는데, 경제력과 정보력이 있는 일부 사용자만 프라이버시 보호 유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되는 현실은 프라이버시를 행복추구와 평등의 관점에서도 바라보아야 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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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권 | 한겨레신문 부설 사람과디지털연구소 소장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한양대 언론학 박사과정을 수료했으며, 한양대 신방과 겸임교수를 지냈다. 1990년부터 한겨레신문 기자로 일하고 있으며, 2014년 설립된 사람과디지털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당신을 공유하시겠습니까?](2014), [인터넷에서는 무엇이 뉴스가 되나](2005), [별별차별](2012, 공저)을 저술했으며, [잊혀질 권리](2011)를 번역했다. 사람과디지털연구소를 통해 디지털 시대, 기술의 새로움과 편리함 너머 더 행복하고 지혜로운 사용법을 성찰하고 널리 알리면서 ‘디지털 리터러시’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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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철학과 구체적인 지침을 ‘디지털 리터러시’ 개념으로 제안한다. 디지털의 속성과 구조를 파악하고 디지털 문법을 제대로 이해하고 사용하는 능력이 우리의 삶을 좌우하는 필수 교양이 된 것이다. SNS가 주는 박탈감이나 행복감 모두를 성찰하면서 도구로서 현명하게 사용할 방법을 권한다. 사람과 디지털의 건강한 관계 맺기를 위한 지침서!
발행2014.0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