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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 분화구, 우주 성층권…어디까지 가봤니? 셀카봉·고프로로 찍은 환상적인 세상

2014.11.4
누리꾼(@neuroprofesor)이 고프로의 아웃도어용 카메라 ‘히어로3’와 셀카봉을 활용해 지인과 함께 패러글라이딩하는 모습을 담아 지난 6월 인터넷에 공개한 사진. 출처 픽사베이

[사람&디지털] 셀카봉·고프로가 바꾸는 시각 이미지

박진감 담는 ‘촬영 도우미’ 넘어 인간의 눈 넓히는 새 도구

2일 새벽, 경기도 과천의 서울랜드에서는 ‘좀비 런’이라는 이색 게임이 펼쳐졌다. 참가자가 좀비 또는 생존자 역할을 맡아 정해진 코스를 돌며 과제를 수행하는 일종의 달리기 게임이다. 좀비는 생존자를 잡고 생존자는 이를 피해 도망가는 방식이다. 괴상한 분장을 하는 미국 명절인 할로윈(10월31일)을 즈음해 열린 이날 행사에는, 주로 20~30대인 참가자 5000여명이 참여해 기구가 멈춘 놀이공원의 밤을 뜨겁게 달궜다. 함께 코스를 돌며 보니, 사람들은 대개 뛰거나 찍었다. 조명이 밝혀진 곳마다 자신의 색다른 모습을 사진으로 담기에 분주한 이들이 모여 있었다. 셀카를 박진감나게 만들어주는 올해의 히트상품 ‘셀카봉’ 역시 곳곳에서 곳에 띄었다.

20㎝에서 1m까지 늘렸다 줄였다 할 수 있는 셀카봉은 혼자서도 사진을 찍기 쉽게 돕는 도구다. 작대기 끝에 스마트폰 등을 끼우고 사진을 찍는데, 손에 들고 셀카를 찍을 때보다 촬영거리가 멀어져 자연스러운 화각과 함께 주변까지 시원하게 담을 수 있다. 올해 초까지도 주변으로부터 ‘별짓 다한다’며 눈총을 받기도 했던 이 도구는 자신과 기록에 대한 애착이 남다른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금세 바람을 탔다. 소셜커머스업체 티켓몬스터 집계를 보면 올해 8월까지 셀카봉 판매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0배 가까이 늘었다. 전국민이 손에 카메라(스마트폰)를 들고 있는 시대에 셀카봉은 찍기 문화의 진화를 상징한다.

셀카봉 1년새 10배 더 팔리고
고프로 기업 가치는 3조원 넘어
전에 못보던 풍경 담아 인기
“사진 통해 기억하는 게 아니라
사진만을 기억한다.
이미지가 이해와 기억 가려” 지적도

진화가 대개 그렇듯이, 카메라와 자신의 거리를 조절하는 막대기를 쓴다는 개념은 앞서 전문가들 사이에 있었다. 사진작가 강재훈씨는 “작가들도 가벼운 삼각대를 한손에 들고 원거리에서 찍는 도구로 활용하곤 했다”고 말했다. 셀카봉은 최근같은 광범한 인기 이전에 아웃도어 스포츠를 즐기는 이들 사이에서 먼저 유행했다. 스키나 스노보드를 타는 이들은 작대기 끝에 카메라를 달고 찍을 때 자신과 동료의 모습을 더 멋지게 연출하면서, 안전거리를 확보하기 쉽다는 장점을 발견했다. 이렇게 자신의 움직임을 담는 이들이 즐겨 쓰는 카메라가 아웃도어 촬영장비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고프로’다.

고프로 창업자 닉 우드먼(39)은 2002년 닷컴 거품이 꺼진 뒤 하던 사업을 접고 오스트레일리아로 여행을 떠났다. 서핑광이던 그는 서핑을 하면서 사진을 찍고자 손목에 카메라를 묶었는데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여기서 착안한 그는 직접 서핑용 카메라를 만들기로 작정하고 2004년 첫 제품을 출시한다. 이렇게 탄생한 고프로의 ‘히어로’ 시리즈는 뛰고, 날고, 헤엄치고, 뛰어내리는 이들이 자신의 멋진 모습을 남기고 공유하는 문화를 잉태하고 매개했다. 이 사업만으로 고프로의 기업가치는 30억 달러(약 3조2000억원)에 달했다(지난 6월 기업공개 당시).

 

상업용 드론 제조업체인 디제이아이(DJI)가 지난달 1일 고프로 카메라와 드론을 이용해 아이슬란드 바우르다르붕가 활화산의 분화구를 근접촬영했다. 유튜브 영상 갈무리

유튜브에서 ‘고프로’ 태그를 단 영상을 검색하면 인간 시선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에 대한 감각의 최전선을 볼 수 있다. 히말라야 산악도로 4500㎞를 오토바이로 달리는 경험, 쿼드콥터(날개가 넷 달린 소형 헬기)에 단 카메라를 통해 본 아이슬란드의 활화산 분화구, 슈퍼카 바퀴에서 보는 스치는 도로의 모습과 지구 성층권에서 초음속 스카이다이빙을 하는 느낌은 무엇인지까지, 성냥갑 2개 크기 90g짜리 고프로를 부착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그 어떤 경험도 담을 수 있다. 심지어 새나 개에 고프로를 달아 동물의 시선으로 본 영상도 공유되고 있다.

15년째 산악자전거를 타고 있는 김대현(34)씨 역시 동영상으로 기술을 연마하고 경험을 공유하는 지구촌 수백만의 젊은이의 한 명이다. 김씨는 고프로의 장점으로 기술 전수와 커뮤니티 형성을 들었다. “예전에는 고수가 말로 지적하는 것을 듣고 감으로 자세를 교정해야 했지만 지금은 영상 리뷰를 하면서 쉽게 고칠 수 있죠. 또 영상을 유튜브 등에 올리면 ‘이런 경험을 했구나’하고 먼곳의 누구와도 공유할 수 있죠. 얼굴도 모르지만 어디선가 만난다면 금방 친해지리라는 것을 알수 있어요.” 이제 우리는 사막 한가운데나 심해 깊은 곳에서도 더이상 고독하지 않다.

 

누리꾼(@FLASHFLOOD)이 플리커에 공개한 사진. 출처 픽사베이
펠릭스 바움카트너의 성층권 다이빙 영상. 유튜브 갈무리

 

스노보드 동호회원인 김민지(33)씨는 이런 장점에 공감하지만 무언가 변했음을 느낀다. “카메라 울렁증이라고도 부르는데, 고프로를 들이대면 사람들의 움직임이 과장되고 부자연스러워지는 걸 느껴요.” 시선이 머무는 곳에서 경험은 변한다. 미국 주간지 <뉴요커>는 지난달 ‘우리는 카메라다’라는 기사에서 고프로로 바뀌는 삶의 모습을 다양하게 짚었다. 전문 산악자전거 선수 아론 체이스의 경험담은 인상적이다. 미국 아이다호의 스모키 산맥을 질주하던 그는 석양에 자신과 함께 달리는 큰사슴 떼를 발견했다. 마법 같은 순간이었지만 한순간 김이 빠졌다. 그의 고프로 스위치가 꺼져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촬영이 일상이 아닌 시절이었다면 이때의 느낌은 어땠을까?

미국 예술비평가 수전 손택은 인류가 1839년 사진을 처음 촬영하기 시작한 이후 이미지 과잉의 시대가 도래했다며 “사람들은 사진을 통해 기억하는 게 아니라 사진만을 기억한다. 이미지가 이해와 기억을 가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강재훈 작가는 사진 찍기가 보편화되는 것에 대해 “부정적으로 볼 일은 아니다”라면서도, 셀카의 번성에 대해선 우려했다. “홀로 찍는 사진만큼 추억과 매력이 없는 사진은 없다. 같은 공간에서도 점차 각자의 기억으로 흩어진 기록만 늘어나는 점은 문제다.”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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