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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이 미술·음악 창작…창의성과 예술은 인간만의 영역?

2016.11.15

인공지능 시대 예술의 의미
인공지능, 예술가 수준의 창작품 선보여
인간만의 창의성이란 무엇인가

예술품이 지닌 불멸의 가치도
인공지능에 의해 대체될 수 있는가
예술과 창의성 본질 향한 본질적 물음

스마트폰의 무료 앱 프리즈마는 사진을 특정한 화가의 화풍처럼 바꿔주는 기능을 제공한다.

인공지능과 자동화 기술이 10~20년 안에 현재 직업의 47%를 대체할 것이라는 영국 옥스퍼드대학 연구진의 보고서를 비롯해 세계적인 연구기관들이 잿빛 전망을 쏟아내고 있다. 컴퓨터와 로봇 기술의 발달로 대부분의 직업과 직무가 기계로 대체될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 창의성이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기계는 반복적이거나 패턴화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사람은 창의적인 일에 종사하는 게 인공지능시대 사람과 기계의 역할 분담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최근 인공지능이 구현하고 있는 기술 수준은 창의성을 인간만의 영역이라고 계속 주장할 수 있을지 의문을 던진다.

구글이 공개한 심화신경망 방식의 인공지능을 활용해 조르주 쇠라의 <그랑 자트 섬의 일요일>을 다양한 형태의 새로운 회화로 변형시킨 그림

# 미술

지난 4월 마이크로소프트와 네덜란드의 델프트공대, 렘브란트미술관은 인공지능 ‘넥스트 렘브란트’를 공동개발해, 생전의 렘브란트 화풍을 빼닮은 회화를 완성했다. 넥스트 렘브란트는 18개월 동안 렘브란트의 작품 346점을 분석하고 렘브란트 그림과 똑같은 느낌을 주는 회화를 입체(3D) 프린터를 이용해 재현하는 데 성공했다. 모자를 쓰고 하얀 깃털 장식과 검은 옷을 입은 30~40대 백인 남자를 그리라고 명령했더니, 렘브란트가 직접 그린 것 같은 초상화를 완성했다. 구글의 딥드림이나 스마트폰 앱 프리즈마 등은 인상파 등 특정 화가의 작품을 학습시킨 뒤 사진을 입력하면 해당 화풍으로 바꿔주는 기능을 선보였다. 미국에서 지난 2월 인공지능이 그린 작품 전시회가 열렸는데 8천달러(920만원)에 팔린 그림을 비롯해 1억원 넘는 판매가 이뤄졌다.

# 음악

소니는 지난 9월 자사의 인공지능 ‘플로머신’이 작곡한 음악 ‘대디스 카’ 등을 유튜브에 공개했다. 1만3000여곡을 분석하고 사용자가 선택한 스타일에 맞춰 작곡을 하는 기능으로 ‘대디스 카’는 비틀스풍의 노래다. 미국 조지아공대가 개발한 연주로봇 사이먼은 머신러닝을 통해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학습한 뒤 뛰어난 재즈연주가처럼 자연스럽고 즉흥적인 재즈 연주 실력을 자랑했다. 구글도 지난 6월 자사의 예술 창작 인공지능인 마젠타가 작곡한 피아노 곡을 공개했다.

# 요리

아이비엠의 인공지능 왓슨은 2014년 미국 사우스바이사우스웨스트 음악축제 기간 푸드트럭에서 다양한 메뉴를 선보였다. 에담치즈를 토르티야로 감싼 오스트레일리아식 초콜릿 브리토 등 인간 요리사가 만들어보지 않은 새로운 요리가 여럿 등장했다. 왓슨은 수천가지 요리의 조리법을 익히고 음식재료들 간의 어울림 정도와 사람들의 반응을 조합해 이제껏 세상에 없던 요리들을 만들어냈다. 왓슨 요리사의 새로운 메뉴를 맛본 이들의 반응은 열광적이었다.

# 시트콤

지난 1월 미국의 소프트웨어 개발자 앤디 허드는 인공지능을 통해 2004년 종료된 인기 시트콤 <프렌즈> 시리즈의 새로운 에피소드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인공지능에게 기존의 <프렌즈> 대본 데이터를 모두 학습시켜 등장인물별 특성과 이야기 구조를 파악하게 한 뒤 새로운 에피소드를 작성하도록 했는데, 주인공들이 구사했을 법한 유머를 비롯해 실제 방영분과 유사한 수준의 대본을 만들어냈다. 알파고와 같은 심화신경망 방식의 머신러닝을 활용한 인공지능이 종영된 드라마 시리즈에 새로운 이야기를 보탤 수 있게 됐다.

넥스트 렘브란트 프로젝트가 만들어낸 렘브란트 풍의 초상화

창의성의 정점에 있는 예술과 창작의 영역에서도 인공지능이 사람을 대체하기 시작했다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기계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을 넘어 예술작품 수준의 창작을 해내는 기술 환경은 예술과 창의성에도 질문을 던진다. 창의성의 본질은 무엇인가, 예술의 본질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다. 예술은 무엇으로 인해 사람들로부터 추앙받고 불멸의 가치를 인정받게 되는가. 인공지능이 만들어낸 창작물도 거장의 작품처럼 불멸의 가치를 갖게 될까?

인공지능이 렘브란트나 고흐의 화풍을 그대로 모방해 아무리 뛰어난 그림을 그렸다고 해도 거장의 작품처럼 가치를 인정받을 리는 만무하다. 인공지능의 그림이 높은 값에 팔렸다지만, 일회성 이벤트에 불과한 일이다. 예술의 가치는 기술적 완성도라기보다 창작자의 정신과 생애, 그리고 유한성에 기반한다. 인공지능이 아무리 <모나리자>와 똑같은 화풍의 초상화를 그려낸다고 해도 그 그림에서는 예술가의 정신과 생애를 찾을 수 없다. 아무리 정교하고 아름답게 보일지라도 무한히 복제가능한 것은 예술품이 아닌 공산품이다. 작가의 삶과 정신이 거세돼 있고 시대적 맥락이 없는 것은 예술품이 될 수 없다.

소변기를 ‘샘’이라고 이름붙여 출품한 마르셀 뒤샹이나 통조림 깡통을 반복적으로 그린 앤디 워홀의 작업이 예술로 인정받는 것은 작품의 탁월성 때문이라기보다 새로운 해석과 작업으로 예술의 지평을 확대한 작가 정신에 기인한다. 예술이 불멸의 가치를 지니게 되는 것은 새로운 환경에서 가치있고 의미있는 것이 무엇인지 천착하고 실행하면서 기존에 없던 새로운 가치와 해석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통해서다. 팝아트나 추상미술만이 아니라 현대의 비구상예술, 설치미술, 행위예술 전반은 모두 이처럼 예술적 지평의 확대에 기여함으로써 가치를 인정받았다.

인공지능이 아무리 뛰어난 완성도의 창작품을 만들어낸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인간의 창의성과 구별된다. 사진술이 등장했다고 해서 회화의 가치와 영역이 사라지지 않았다. 사진술 이후의 회화는 사진술 이전에는 없던 새로운 화풍의 창조를 견인해 더욱 다양한 예술 풍토를 만들어냈고, 그중에는 사진술을 이용한 장르도 생겨났다. 일찍이 파블로 피카소는 “컴퓨터는 쓸모없다. 대답만 할 뿐이다”라고 말했다. 예술과 창의성은 끊임없이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인간만의 능력이다.

구본권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 starry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