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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의 셀카’보다 더 아찔한 ‘진짜 위험한 셀카’

2015.01.7
평범함을 거부하고 색다른 셀카를 찍으려다 비명횡사로 이어지는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페이스북 캡처 사진

수술실서 ‘생일 파티 인증샷’ 등 ‘부적절 셀카’
위험성 인지 못한 무개념 셀카는 무엇보다 위험

‘진짜 위험한 셀카’가 셀카 열풍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셀카 열풍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영국 <옥스퍼드 영어사전>은 2013년 말 ‘셀카’(영어로는 selfie)를 올해의 단어로 선정했다. ‘셀카’라는 단어의 사용이 12개월 만에 170배 늘어났다는 게 선정의 이유였다.

기술도 계속 진화하고 있다. 스마트폰의 전면 카메라 성능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200만 화소 수준이었으나, 2014년 500만 화소급 전면 카메라가 보편화하더니 화웨이는 800만 화소급까지 출시했다. 올해부터는 800만 전면 카메라 화소가 대중화할 전망이다. 더 박진감 나는 셀카를 만들어주는 셀카봉은 나홀로 여행자의 도구를 넘어서 이제 어디에서나 손쉽게 만날 수 있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2014년 최고의 발명품 중 하나로 ‘셀카봉’을 꼽았을 정도다.

스마트폰 사용자들의 ‘셀카 사랑’은 사진을 통한 자기 표현 수준을 넘어선다. ‘극한의 셀카’가 등장하는 이유다. 절벽에서, 고층빌딩 첨탑에서. 고압선 철탑에서 색다른 셀카 한 장을 남기려다 비명횡사했다는 뉴스도 이어졌다. ( ▷ 관련 기사 : 셀카가 뭐길래…죽음을 부르는 셀카 )

누가 보아도 아슬아슬하고, 촬영자 스스로 위험성을 인지한 ‘극한의 셀카’와는 또다른 종류의 ‘위험한 셀카’도 셀카 열풍에 가세하고 있다. 촬영자가 기꺼이 위험을 무릅쓰는 극한의 셀카가 주로 물리적 위험을 감수하는 모험인 데 비해, ‘위험한 셀카’는 사용자가 웬만해서는 그 위험성을 알지 못하는 비물리적 위험성이 배경이다. 셀카 촬영의 맥락과 상황을 모르거나 망각한 ‘부적절한 셀카’들이다. 이럴 경우에는 셀카 한 장으로 망신을 당하거나, 주변이 곤욕을 치르게 되고 때로는 신세를 망치기도 한다.

서울 강남의 한 성형외과 간호조무사가 수술중인 환자가 있는 수술실에서 생일 파티를 하고 여러 차례의 인증 사진을 찍어 SNS로 공유했다가 곤욕을 치른 사례. 한겨레 자료사진
이 셀카들은 해시태그(#)를 달아서 SNS에서 적극 공유되기를 바란 사진들이다. 한겨레 자료사진

최근의 서울 강남의 한 성형외과 간호조무사가 수술중인 환자가 있는 수술실에서 생일 파티를 하고 여러 차례의 인증 사진을 찍어 SNS로 공유했다가 곤욕을 치른 사례가 대표적이다. 특히 우발적으로 잘못 올린 것이나 타인에 의해 촬영자의 의도와 다르게 공유된 것이 아니라, 이 셀카들은 해시태그(#)를 달아서 SNS에서 적극 공유되기를 바란 사진들이다. 또다른 강남의 성형외과는 얼굴뼈 성형수술 과정에서 잘라낸 환자들의 턱뼈를 모은 ‘턱뼈 탑’을 병원 안에 전시하고 이 사진을 병원 홈페이지에 올려 자랑스레 홍보해왔다가 의료법 위반 혐의로 조사를 받았다.

스스로를 위험 속으로 몰아넣는다는 데서 ‘극한의 셀카’와 ‘부적절 셀카’는 유사하지만, ‘진짜 위험한 셀카’는 아슬아슬한 곳에서 찍은 ‘극한의 셀카’라기보다 안전하다고 여긴 곳에서 찍은 ‘부적절 셀카’다. 사실 인지된 위험은 사용자가 통제력을 발휘할 수 있으면 다른 사람들에게는 위험해보여도 조작자에게는 생각만큼 위험하지 않을 수 있다. 대기권이나 우주공간에서 셀카를 찍는다는 것이 일반인들로서는 극한을 넘어서는 상황이지만, 우주비행사에게는 통제할 수 있는 상황일 수 있다. ‘우주 셀카’가 등장한 배경이다.

우주 셀카. 한겨레 자료 사진

하지만 상황과 맥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셀카를 보게 될 많은 사람들의 일반적 정서에 대해 무지한 상태에서 찍고 유포하는 ‘부적절 셀카’는 ‘극한의 셀카’에 비할 수 없이 위험하다. 촬영자는 미처 인지하지 못했지만, 그 셀카를 보게 될 수많은 사람들은 사진 한장에서 많은 문제점과 실마리들을 찾아낼 수 있다. 성형외과 수술실 셀카가 대표적이다. ‘극한의 셀카’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입을 벌리고 경탄을 부르게 하는 반면, 부적절한 상황 찍은 ‘무개념 셀카’는 경탄이나 동정 대신 비난의 대상이 된다. 세월호 침몰 때 사망자 명단 앞에서 인증 사진을 찍었던 당시 안전행정부의 한 국장은 이 때문에 해임됐다.

외국에서도 장례식 셀카나 아우슈비츠, 9.11 기념물, 국립묘지, 운전중인 자동차 등 부적절한 곳에서 셀카를 찍었다가 곤욕을 치르는 경우가 적지 않다.

기술은 점점 편리해지고 사용법은 쉬워진다. 단계마다 촬영을 위한 상세 설정이나 이후의 후처리 작업, 배포와 공유를 신경쓸 필요없이 늘 휴대하는 스마트폰에서 거의 ‘자동적으로’ 촬영과 공유가 이뤄지는 세상이다.

이런 환경에서는 기기와 기술의 조작법을 익히는 것보다, 기술과 기기의 속성을 이해하는 것이 먼저다. 해당 콘텐츠가 어떠한 맥락과 배경에서 생산돼 소비될지를 염두에 두고 적절하게 다룰 줄 아는 ‘진정한 사용법’, 즉 ‘디지털 리터러시’가 필요한 이유다.

구본권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 starry9@hani.co.kr

[화보] 셀카 찍다 죽을수도…극한에서 찍은 사진들